정오의 한 끼

명절에 고기를 안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달코인 2022. 1.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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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죠.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으로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아 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요. 옛날 선비님들은 매일매일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 현대에 사는 제가 좋아하는 것은 고기입니다. 특히 이런 대 명절에 "명절이니까" "명절 기념으로" "명색이 명절인데 고기 정도는 먹어야지 명절이지"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게다가 명절에 고기를 안 먹고 채소와 과일만 먹고 지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설 명절이면 먹는 떡국은 나이 한 살 더 먹기 싫어 거를 수도 있지만, 명절에 고기를 얻어먹지 못하거나 먹지 못하는 일은 매우 서글픈 일입니다. '내가 이번 명절을 참 잘 지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집니다. 자고로, (일일부육식구중생형극: 一日不肉食口中生荊棘)이라고 바꾸어 말하고 싶네요.

명절이나 집안의 잔치가 있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늘 집에 방문할 손님들을 생각해서 음식을 장만하곤 합니다.
특히 설날 전날은 며느리들이 주방에 모여 앉아서 하루 종일 전과 설에 제사에 올릴 음식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데 꼭 이 설 전에 방문하시는 손님들도 많았어요. 그러면 바쁜 손을 멈추고 제사에 올릴 것은 미리 따로 빼두고 전이나 고기, 나물과 얼큰한 찌개, 만둣국을 끓여서 내놓습니다. 정말이지 설음식 준비하는 날 오시는 눈치 없는 손님들이 제일 미웠습니다. 내가 못된 건지, 손님은 손님대로 방문할 곳이 여기저기이니 전날은 우리 집에 인사를 오신 거겠지요.


이렇게 집에 손님이 많이 오시는 이유는 다 시어머님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을 매우 신경을 쓰셔서 대접을 하십니다. 그중에도 서운하지 않게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고기인데요. 다른 집에 생신이 있거나 명절에 방문해서 음식상을 보면 대개 간장 불고기나 돼지갈비를 찜으로 해서 상에 올리는 데 꼭 우리 집 은 돼지갈비도 아닌 그 비싼 소갈비나 이동갈비 아니면 LA갈비를 양념을 김치통에 한 박스를 해 놓았다가 손님들 오시면 내놓습니다. 비싼 소갈비라니요, 이동갈비라니요, 비싼 LA갈비라니요. 처음에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음을 이해합니다. 

가족끼리 먹을 땐 그런 비싼 고기를 먹고 손님들에겐 동네 이웃분들이나 친척분이니 저렴하고 양 많은 불고기나 돼지갈비나 갈비탕 이런 것 하면 충분할 텐데 어머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좀 상차림이 허전하다 느끼시는 건지 생굴을 사다가 한 박스 사놓기도 합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모든 정성을 다합니다.

양념에 잰 이동갈비 맛있다!

 

한 번은 며느리들이 건의를 했습니다. "어머님, 가격이 너무 비싼 걸로다가 손님을 대접하시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좀 저렴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소갈비 그런 것은 다른 음식들 보다도 더 많이 먹습니다. 감당이 안돼요"라고 말하니 어머님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내 돈으로 다 사 올 테니 너희 들은 그냥 음식만 하면 돼. 내가 미리 양념에 재 놓을까?" 하십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참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비용을 아끼지 않고 대접하던 시간들이 있었지요.

포천이동갈비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들. 예전보다 반찬가지수가 줄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10년, 20년 되어가니 그 많던 초창기 손님들은 이웃은 이사를 가거나 돌아가시고 친척분들도 나이가 드셔서 돌아가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시어 오시지 못하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답니다. 그 많던 손님도 영원하지는 않고 그 손님을 대접하던 어머님의 열정적인 모습도 나이가 드셔서 인지 요즘은 음식을 간단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옛날보다 높아진 가격도 한 이유가 됐지요.

 

다 태웠다 고기. 아 비싼 내 갈비

 

명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음식 가짓수가 하나씩 없어집니다. 설날 전 시리즈 육전, 고기전, 녹두전, 김치전, 굴전, 버섯전, 동그랑땡, 두부전 등이 간소화를 통해 사라졌습니다. 전을 몇 바구니씩 해 놓아도 식으면 맛이 떨어지고 집에 가져가면 안 먹게 되니 하지 않습니다. 단지 가족들이 모이면 무조건 고기는 있어야 합니다. 고기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기에 고기는 필수. 고기에 생선회 그리고 뜨거운 국물류 하나만 하고 끝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풍족하나 모든 먹거리들의 가지수는 역방향으로 간소화되고 있습니다. 

포천 이동갈비 숯불로 구워먹는 맛 최고.

 

작년 설과 마찬가지로 이번 설도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음식은 그냥 안 먹어도 되는데 맛있는 고기는 집에서 손수 재어서라도 먹어야 명절을 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는 안부에 "명절 잘 보내셨나요?" 고기를 안 먹었으면 "예"라고 말하기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왜? 생각해보니 참 이상합니다. 집에서 못 해먹을 양이면 식당에 가서라도 사 먹고 옵니다.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말입니다. 이와 같이 고기에 대한 사랑, 흰밥과 함께라면 더 좋은 고기 사랑조건 없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이동갈비로 유명한 포천 이동면

 

설 연휴에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우리는 미리 고기를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고기를 먹고 나오는 길에 차 안에서 보이는 포천 이동면의 마을 모습 뒤로 긴 평야처럼 옆으로 능선이 쭉 뻗어있는 이 산 뷰가 너무 아름다워 찍어 보았습니다. 명절은 채 오지 않았는데 '이번 명절도 잘 지나가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저 산은 포천의 그 유명한 백운산인가?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포천 이동면의 마을 위로 둘러싸인 거대한 산 능선이 정말 아름답네요. 고기를 먹어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저 저 눈이 내린 산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그동안 해왔던 손님 대접은 그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오셔요~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해도 올 사람도 없습니다. 그동안 어머님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낌없는 상차림을 내셨을까요? 정말 좀 과하다 싶었던 상차림. 오늘 고기를 마음껏 먹고 나서 충만한 기분으로 바깥 경치를 보던 나의 마음처럼 어머니는 손님들에게 "이 집은 사람대접을 참 잘해~" 이런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다른 집은 안 가도 우리 집에는 와서 음식을 먹고 가셨던 모든 손님들. 그런 풍족함을 지금은 생각해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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